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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한 문자
Sacred Script

 
이준열 Lee Junyeol (feat. 김연지)
 
히브리 문자, 아랍 문자, 아베스타 문자, 산스크리트 문자
종이, 금속
2000×2000mm
문자가 생기기 전부터 신은 존재했다. 인간은 자신의 한계를 넘어선 곳에서 신을 발견하곤 했고, 구전으로 내려오던 신의 말씀은 문자의 발명으로 경전으로 구체화되면서 신화에서 종교로 변모해갔다. 종교의 탄생 이후, 문자로 표현된 신은 정형화된 신의 이미지를 탄생시켰고, 기록된 책을 통해 수 천 년을 거쳐 사람들의 숭배대상이 되었다. 문자는 사상을 공간적으로 물질화함으로써 영속성을 갖게 할 수 있으나, 인간의 영역을 초월한 신의 이미지는 문화적, 정치적 요인들로 인해 전달자와 해석자 사이의 왜곡된 개입을 피할 수 없었다. 우리는 신의 이미지가 어떻게, 그리고 또 얼마나 왜곡되었는지조차 제대로 알 수 없다. 구술로 전해졌다면 시대에 따라 변화했을지도 모르는 것들이 문자로 기록됨으로써 갇혀 있는 것일 수도 있다. 경전은 신자의 종교적, 윤리적 행동의 기준이 되기도 하지만, 때로는 그 내용보다도 경전자체가 마치 신인듯 신성시 되기도 한다. 유대교에선 히브리어로 작성된 문집만 경전으로 인정되고 다른 언어로 번역된 것은 경전으로 간주되지 않는다. 이슬람에서도 아랍어 코란만이 인정되며, 아랍의 무슬림들에게 진정한 문자는 곧 코란을 적은 아랍문자뿐이다. 관람객은 신이 재림하는 제대(탁자)와 경전(의자) 사이에 앉아 각 종교가 인정한 성스러운 문자가 아닌 다른 종교의 문자로 경전을 써보는 행위를 통해 문자의 기록으로 가져올 수 있는 왜곡을 인식하고, 문자가 가진 문화적 선입관과 그로 말미암은 문자의 신성한 권력과의 연결고리를 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