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위에쓰는글 3 c
모래 위에 쓰는 글 III
Writing on Sand III

 
안규철
Ahn Kyuchul
 
문자 없음
금속, 우레탄 페인트, 모래
1800×600×700mm
모래는 약하지만 세상의 그 어떤 돌보다도 강하다. 돌에는 형상을 새길 수 있지만 모래에는 아무것도 새길 수 없기 때문이다. 모래는 모든 것을 받아들이지만 동시에 아무것도 받아들이지 않는다. 아무것도 보존하지 않는 것이 모래의 본성이다. 모래 위에 우리가 남기는 흔적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사라진다. 언제나 제자리로 돌아가려는 모래의 이 완강한 복원력은 세상에 기록을 남기고 기억을 보존하려는 우리의 모든 노력들이 결국은 실패하리라는 것을 끊임없이 일깨워 준다. 형상과 문자의 영원한 라이벌로서 사막은 저 멀리 몽골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숱한 이미지와 정보가 흘러 넘치는 우리의 일상 속에, 우리가 글을 쓰고 있는 이 모니터 속에 있다. ‹모래 위에 쓰는 글›은 ‘기억과 망각’, ‘의미와 무의미’가 만나 끊임없이 경합하는 극장이고 하나의 작은 사막이다.